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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령시

  • 1930년대의 약령시
    [1930년대의 약령시]

조선시대 대구 약령시는

전국 최대의 약령시장이었다.

대구약령시는 경상도관찰사 임의백(任義伯)이 효종9년(1658) 경상감영 내 객사 주변에서 봄·가을의 두 차례에 걸쳐 정기적으로 약재시장을 개설한데서 시작되었다.

대구에서 약령시가 열리게 된 이유는 분명하지 않으나, 조정에 진상할 약재를 수집하고 일본에 약재를 수출하기 위하여 열린 것으로 보고 있다.

당시의 약령시는 봄과 가을 두 번 열렸으며, 봄(春市)에는 2월 3일부터 10일간 현재의 대안동 부근에 있던 객사(달성관)를 중심으로 남쪽에서 열려 이를 남시(南市) 라 하였으며, 가을(秋市)에는 10월 3일부터 10일간 객사 북쪽에서 열려 이를 북시(北市)라고 하였다. 그러다가 1908년 일제에 의해 객사가 헐리게 되자 지금의 남성로 일대로 이동하였다.

1894년 갑오개혁으로

조정에 진상이 폐지되면서 약령시에 대한 관의 지원과 관리가 허술해지면서 약령시의 개시일은 불규칙하게 되었으며, 거래량도 점차 줄어들게 되었고, 1914년에는 일제에 의해 춘시가 폐지되었다.

이처럼 쇠퇴하는 약령시를 회복하기 위하여 1923년에는 대구 약령시진흥동맹회를 조직하고 공정거래, 상업금융, 운임특혜 등 약령시의 부흥을 위한 각종 사업을 추진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양약의 도입 등으로 점차 쇠퇴하여, 한국전쟁 이후 약령시는 현재의 남성로인 약전골목에서 상설 한약상으로 변화되어 옛 명성을 간직하고 있다.

  • 약령시 축제
    [약령시 축제]
  • 한의약 관련유물 일제
    [한의약 관련유물 일제]
자료 담당자 :
향토역사관 변성호 Tel. 053-606-6437
최근자료수정일 :
2016.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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