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1. Home
  2. 대구의 문화와 산업
  3. 농업

농업

  • 대구 무술명오작비
    [대구 무술명오작비 경북대박물관 소장]

한반도에서는 신석기시대부터

농경생산이 시작되었다고는 하나, 벼농사의 경우 기원전 5~6세기경에 이르러 널리 보급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후 인구의 증가와 농경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취락의 규모도 커지고, 관개(灌漑)와 치수(治水) 등의 시설 규모도 커져왔다. 우리나라 농경역사에서 기록을 갖는 관개 유적으로 가장 오랜 것은 백제 비류왕 27년(330)에 축조한 김제 벽골제(碧骨堤)이다.

대구는 농경생산의 발달을 가져올 수 있는 천혜의 자연환경을 가진 지역 중의 하나로, 비록 벽골제 같은 유적은 잃었으나 관개 축조의 가장 오랜 유적인 신라 법흥왕 5년(518)에 둑(塢)을 축조하고서 세웠던 무술명오작비(戊戌銘塢作碑)가 있다.

무술명오작비는 무술년 4월 대구의 영동리마을에 10여명의 지방하급관리와 312인의 인부가 동원되어 13일 만에 둑 공사를 완료하였으며, 그 규모는 길이 50보(步, 약 90m), 너비 20보(약 36m) 높이 5보 4척(약 10m)이고, 공사의 책임감독자는 신라의 도유나(都唯那)란 승직명을 가지는 2인의 승려였음을 기술하고 있다.

이러한 오작비의 존재는 대구지역이 고대국가가 발생되면서 국가적 수리사업을 추진해야할 만큼 중요농업생산지였음을 말해준다.

자료 담당자 :
향토역사관 변성호 Tel. 053-606-6437
최근자료수정일 :
2016.06.08

현재페이지의 내용과 사용편의성에 만족하십니까?

사용편의성 만족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