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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교육

  • 계성학교 개교식 1906년
    [계성학교 개교식 1906년]
  • 대구고등보통학교 1916년설립
    [대구고등보통학교 1916년설립]

대구 최초의 근대적 학교는

1899년 7월에 설립된 사립달성학교이며 산술·화학·만국지리·동양사·서양사·지리·체조 등 신학문을 가르쳤다.

기독교계 계통의 근대적 학교인 희도학교는 선교사 아담스(James E. Adams: 安義窩)가 설립자 겸 교장으로 1900년 11월 제일교회 구내 초가집에서 개교하였다. 같은 해 선교사 부르엔의 부인인 마르다 부르엔(Marda Bruen: 傅馬太)이 여자부 소학교를 역시 제일교회 구내에서 시작하였는데, 남자부를 대남소학교, 여자부를 신명여자소학교라 하였다(1914년 대남소학교는 희원학교, 신명여자소학교는 순도여자학교로 개칭, 1926년 희도보통학교로 통합). 또한 1906년에는 제일교회 구내에 남자중학교 과정인 계성학교와 1907년 남산동에서 여자중학교과정인 신명여학교를 설립하였다.

1906년 1월에는 김광제, 서상돈 등이 경북도내 각 군의 유지 400여명으로 대구광문회를 조직하고 대구광문사를 설립해 신교육 운동을 전개하면서 사립협성학교(교장 徐相夏)를 세웠으며, 이해 3월 교사양성을 위한 대구사립사범학교(교장 徐相夏)도 남문 밖 관덕정에 설립했다. 9월에는 대구 최초의 공립학교인 대구보통학교(교장 嚴星九)가 세워졌다.

이처럼 개화기에 신학교 설립이 잇따르자, 이에 반발하여 구본신참(舊本新參)·의구종신(依舊從新)의 교육사상을 내걸고 1907년 9월 개교한 사립수창학교(교장 徐鳳綺)가 구학과 신학을 함께 가르치기도 하였다.

1908년에는 현경운이 대구노동학교를 세워 사회교육의 효시가 되었으며, 또한 많은 측량학교가 세워져 기술교육의 새 장을 열었다. 이해 3월에는 계산성당 구내에 성립학교(교장 李根雨)가 설립되었으며, 1915년에 김찬수(金燦洙)가 인수하면서 해성학교로 개칭하였다.

1909년 3월에는 사립협성학교가 사립달성학교 고등과와 병합되었다가 1916년 설립된 대구고등보통학교(현 경북고의 전신)에 통합되었다. 이처럼 개화기 대구에는 선구적 계몽사상가나 천주교·기독교 신자에 의해 많은 사립학교가 설립되어 근대교육의 밑거름이 되었다.

자료 담당자 :
향토역사관 변성호 Tel. 053-606-6437
최근자료수정일 :
2016.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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