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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 2.28의거, 시위중인 학생들
    [2.28의거, 시위중인 학생들]
  • 2.28기념탑 두류공원내
    [2.28기념탑 두류공원내]

1945년 8월 15일

일제의 패망과 지속적인 민족운동을 통해 민족의 염원인 해방을 맞았다. 그렇지만 전국적으로 좌우대립이 심각하게 전개되는 가운데 미군정하의 대구는 식량난과 콜레라의 만연 등 극도로 불안하였다. 1946년 10월 1일에는 식량을 요구하는 시위대를 진압하는 과정에 발포,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여 소요사태가 경북지역, 다시 남한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1948년 5월 10일 제헌국회 선거가 실시되고, 8월15일 대한민국정부가 수립된 후 1949년 지방자치법 실시에 따라 대구부는 대구시로 개칭되었다. 1950년 6·25 전쟁기에 대구는 수많은 피난민의 피난처가 되었고 낙동강방어전선의 중심적 역할을 수행하였다.

1960년 이승만 정부의 독재가 계속되자, 대구지역의 학생들은 2월28일 독재를 반대하는 시위를 감행하였다. 2·28민주학생의거는 3·15 부정선거 규탄시위와 더불어 자유당 독재정권을 물러나게 한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되어 우리나라의 민주화에 크게 기여하였다. 1960년대부터 시작된 산업화 시기에는 대구의 섬유산업이 우리나라의 경제발전에 큰 역할을 하였다.

1981년 대구는 달성군의 월배읍·성서읍·공산면, 칠곡군의 칠곡읍, 경산군의 안심읍·고산면을 편입하여 대구직할시로 승격하였으며, 1995년에는 달성군을 편입하여 대구광역시가 되었다. 또한 2002년 한·일 월드컵의 본선경기를 치르고 2003년에는 하계유니버시아드를 개최하면서 국제도시의 면모를 갖추기에 이르렀다.

자료 담당자 :
향토역사관 변성호 Tel. 053-606-6437
최근자료수정일 :
2016.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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