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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 대구부청 현 대구시의회위치
    [대구부청 현 대구시의회위치/1910년 건립]

1910년 8월 대한제국은

일제에 의해 국권을 강탈당하였다. 조선총독부는 1914년에 부제(府制)를 실시, 이 때 대구는 대구부(大邱府)로 개칭되어 1945년까지 계속되었다.

일제강점기에도 대구에서는 다양한 독립운동이 활발하게 펼쳐졌다. 1915년에는 윤상태(尹相泰), 서상일(徐相日) 등 대구지역의 지식인층이 중심이 되어 앞산 안일암에서 조선국권회복단 중앙총회(재건 달성친목회)가 만들어졌고, 같은 해 달성공원에서 대한광복회가 결성되었다.

1919년 3·1 운동 때에는 3월 8일 서문시장에서의 만세시위 운동을 시작으로 수차례 만세운동이 이루어져 경상북도 전 지역으로 확산되었다. 그리고 영남유림이 파리강화회의에서의 독립청원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였고, 이후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자금을 공급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그러나 1906년 당시

1927년에는 신간회 대구지회가 결성되어 민족운동의 저변을 확산시키는 등 항일운동을 전개하였으며, 이 해 의열단원 장진홍(張鎭弘)에 의해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1930년대 이후에는 일제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반딧불회 사건 및 태극단 사건이 발생하는 등 각 학교 학생들의 항일저항 운동이 계속되고 비밀결사가 활발히 이루어져 독립운동의 한 축을 이루었다.

1944년에는 일본군 제 24부대에 강제 징집된 학도병들이 집단적으로 탈출하는 사건이 일어나는 등 대구는 근대로부터 일제강점기의 탄압 속에서도 국권회복과 자주독립을 위한 지속적인 항일 투쟁이 전개된 고장이었다.

  • 달성공원에서 바라본 대구시가지
    [달성공원에서 바라본 대구시가지]
  • 중구 포정동 일대 1920년대
    [중구 포정동 일대 1920년대]
자료 담당자 :
향토역사관 변성호 Tel. 053-606-6437
최근자료수정일 :
2016.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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