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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역사아카데미

대구는 선조34년(1601)

경상감영 설치 후 경상도의 중심역할을 하였으나 1895년 전국지방제도의 개혁으로 전국이 8도에서 23부로 개편됨에 따라, 대구에는 23부의 하나로써 23개 군을 관할하는 대구부(대구관찰부)가 설치되었다.

또한 이 해에 대구진위대가 설치되어 종로(현 만경관 MMC 부근)에 주둔하게 되었다. 이듬해인 1896년에 다시 전국을 13도로 개편하는 지방제도가 시행되어 대구는 다시 대구군으로 개칭되면서 경상북도의 중심이 되었다.

  • 국채담보금영수증
    [대구민의소발행
    국채담보금영수증]
  • 김광제
    [김광제]
  • 서상돈도
    [서상돈]

그러나 1906년 당시

1905년 을사늑약으로 인하여 일제 통감부가 설치되면서 1906년 9월에 그 산하기관인 대구이사청이 설치되는 등 대한제국 말기 일제의 국권침탈이 가속화되었다. 이에 대구지역에서는 인재를 양성하여 일제로부터 자주성을 지키려는 교육·계몽운동과 무장투쟁을 통해 직접 일제를 몰아내려는 의병전쟁 등 활발한 국권회복운동이 전개되었다. 1906년에는 대구광문회와 대구광학회가 결성되었고, 대구광문회에 의해 대구민의소가 설립되었다.

특히 1907년 서상돈(徐相敦)·김광제(金光濟) 등이 대구민의소를 기반으로 하여 전국에서 처음으로 국채보상운동을 발의하였다. 이 국채보상운동은 당시 대한제국정부가 일본으로부터 들여온 천삼백만원의 차관을 담배를 끊는 운동으로 국민스스로가 상환하고, 기울어가는 국권을 회복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시작되어 곧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고종황제로부터 일반 국민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참여 속에 진행되었으나, 일제의 이간과 탄압으로 인하여 좌절되었다.

  • 대구시가도
    [대구시가도 1905년경]
자료 담당자 :
향토역사관 변성호 Tel. 053-606-6437
최근자료수정일 :
2016.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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