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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읍성

  • 대구부지도
    [대구부지도]

대구의 읍성은

일본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하여 선조 23년(1590) 달성(達城)에서 동으로 2리(약 800m) 떨어진 곳에 토성으로 축조되었다. 그러나 이 토성은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이 통과하면서 파괴되었다. 이후 약 140여 년 동안 대구는 읍성이 없는 관아도시로 있게 되었다. 영조 12년(1736) 관찰사 민응수(閔應洙)가 영조의 윤허를 얻어, 그해 1월부터 6월까지 대구 주변 군현민들을 동원해서 달성으로부터 4리(약 1,600m) 떨어진 곳에 이전보다 넓게 석축으로 재건하였다.

축조 당시 읍성의 규모는 둘레가 2,124步(약 2.68㎞)이고 높이는 서남쪽이 18尺(3.78m), 동북쪽이 17尺(3.57m)이었으며, 성의 동서남북에 4개의 정문과 동서에 2개의 소문(小門)이 있었다. 1870년 김세호(金世鎬) 관찰사 때 대원군의 명에 의해 대대적인 중수가 이루어져 성벽이 개축·확장되었고, 4개의 누각과 8개의 포루(砲樓)를 증설하였다.

그러나 1906년 당시

관찰사 서리로 있었던 박중양(朴重陽)이 일본인의 요구에 따라 읍성을 철거하기 시작하여, 이듬해인 1907년 4월 대구 읍성을 흔적 없이 해 버렸다. 당시 감영의 정문이던 관풍루(觀風樓)와 읍성의 북서쪽 모서리에 있던 누각인 망경루(望京樓)는 달성공원으로 옮겨졌으나, 망경루는 철거되었고 관풍루는 전체적인 수리를 거쳐 현재까지 남아 있다.

  • 철거 전의 대구읍성 모습
    [철거 전의 대구읍성 모습]
자료 담당자 :
향토역사관 변성호 Tel. 053-606-6437
최근자료수정일 :
2016.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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