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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 관풍루에 있던 잡상
    [관풍루에 있던 잡상]

고려 말 정치·군사 및 교통상의

요충지로 부각된 대구(大丘)는 농업의 중심지로도 발전하였고, 이와 함께 인구도 늘어나, 조선이 건국된 후 점차 그 위상이 높아지게 되었다.

조선 건국 직후인 태조 3년(1394) 인근의 수성현(壽城縣)과 해안현(解顔縣)이 대구현에 속하게 되어 대구의 인구는 약 1,300여 호에 달하게 되었다. 이러한 대구의 발전은 농업을 비롯한 산업의 발달과 교통의 편리, 그에 따른 시장의 발달로 인한 것이었다. 이후 대구는 발전을 거듭하여 세종 1년(1419)에는 현에서 군으로 승격하였고, 세종30년(1448)에는 전국에서 최초로 민간 구휼기관인 사창(社倉)이 설치되어 시범 운영되기도 하였다.

세조 12년(1466)에 대구는 도호부가 설치되면서 정치·군사적 요충지로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 때에는 대구가 의병활동에 있어 큰 역할을 하였고, 선조 34년(1601)에는 경상감영이 설치되어, 영남지역의 교통·군사 중심지이자 행정 중심지로도 발전하게 됨에 따라 명실상부한 영남지역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리하여 해안현·하양현(河陽縣)·경산현(慶山縣)·수성현·화원현(花園縣)·하빈현(河濱縣)을 거느린 큰 도시로 성장하게 되었다.

대구가 이처럼 발전하게 된 것은

지리적으로 경상도의 중앙에 위치하여 교통상의 요충지가 되었던 것과 감영이 설치되면서 정치·행정의 중심지가 되었던 것, 그리고 농산물의 주요 집산지였던 것 등에 말미암은 것이다.

  • 선화당,현 경상감영공원
    [선화당,현 경상감영공원]
  • 관풍루
    [관풍루]
자료 담당자 :
향토역사관 변성호 Tel. 053-606-6437
최근자료수정일 :
2016.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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