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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 청동거울
    [청동거울]

신라 이래의 전략적 요충지답게

대구는 후삼국기에 들면서 왕건과 견훤이 팔공산을 중심으로 전투를 벌이는 등 각축장이 되었다. 그러나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하고 수도를 송도(松都:개성)로 정해 북진정책을 추진하게 되면서, 이전의 지정학적 요충지로서의 대구는 비중이 크게 감소되었다.

고려 초기의 대구지역은 수성군(壽城郡)·대구현(大丘縣)·해안현(解顔縣)으로 분리되어 있었다. 대구현은 수성군에 속해 있었고, 해안현은 장산군(獐山郡 : 현 경산)에 속하였다.이후 현종 9년(1018)에는 수성군과 해안현은 경주인 동경(東京)에 속하게 되고, 대구현은 경산부(京山府: 현 성주)의 속현(屬縣)이 된다. 이처럼 고려 전기에 있어서는 속현으로 위상이 축소되었다가, 인종 21년(1143) 현령관(縣令官)이 파견되어 주현(主縣)으로 승격한다. 이는 중앙에서 대구지역을 중요한 농업생산지로 인식한데 따른 것이다.

이러한 위상의 결과로

12세기의 무신정권기에는 전국적으로 민란이 일어났을 때 대구가 그 중심지의 하나가 되었고, 몽고침입 때 공산성(公山城)에서 벌어진 항쟁 등이 보여 주듯이 정치·군사적 요충으로 다시 등장하게 된다.

  • 신숭겸장군유적지
    [왕산-신숭겸장군유적지]
  • 성지세다라니경
    [초조본 성지세다라니경]
자료 담당자 :
향토역사관 변성호 Tel. 053-606-6437
최근자료수정일 :
2016.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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