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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시대

  • 팔공산 마애약사여래좌상
    [팔공산 마애약사여래좌상]
  • 부인사 석등
    [부인사 석등]

신라의 삼국통일 이후

대구는 지방의 한 현(縣)으로 위상이 그리 높지 않았으나, 신문왕 9년(689)에는 신라 도읍을 경주에서 달구벌로 옮기려는 시도가 있었을 만큼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지역이었다.

또한 신라의 지방 군사조직인 10정(停)중 하나가 대구의 진산인 비슬산 아래(現 현풍)에 주둔하였다. 경덕왕 16년(757)에는 달구화(達句火)에서 대구(大丘)라 개칭하였다. 신라 말에는 청해진대사 장보고의 군대가 왕위쟁탈전 과정에 이 곳에서 전투를 벌였고, 후삼국기 왕건과 견훤도 경주를 차지하기 위해 대구 공산에서 격전을 벌였다. 이는 대구가 신라 말까지도 경주와 지방을 연결하는 군사·교통의 요충지였음을 말해준다.

신라에는 다섯 명산(五岳)이 있어 봄과 가을에 제사를 지내는 풍속이 있었다. 이들 오악은 국가의 동·서·남·북과 중앙을 대표하는 산으로 지금의 토함산·지리산·계룡산·태백산 그리고 중앙인 중악(中岳) 팔공산을 말한다. 팔공산은 신라의 큰 신앙대상지답게 동화사·송림사·부인사·은해사 등 불교유적이 많다. 지금도 동화사 입구의 마애불좌상(보물 제243호)을 비롯한 산 전역에 보물급 문화유산이 다수 전한다.

자료 담당자 :
향토역사관 변성호 Tel. 053-606-6437
최근자료수정일 :
2016.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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