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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서유적

  • 달성유적
    [달성유적]

달성(達城)은 자연 구릉을 이용하여

그 위에 흙과 돌을 쌓아 만든 토성(土城)이다. 규모는 동서 약 380m, 남북 약 470m로 전체 길이는 1,300m이다. 성벽의 규모는 부분적으로 차이가 있으나 하부 폭은 최대 20m에 이르며, 높이는 4~7m로 전체 모습은 오각형에 가까운 모양이다. 우리나라 성곽 발달사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나타난 경주 월성과 형태가 유사한 평산성(平山城)으로, 생김새와 보존상태가 양호해서 사적 제62호로 지정되어 있다.

기록으로는 신라 첨해이사금(沾解尼師今) 15년(261)에 달벌성을 쌓고 나마(奈麻) 벼슬의 극종(克宗)을 성주로 삼았다는 내용이『삼국사기』에 전하지만, 달성은 청동기시대부터 지역의 중심을 이루던 집단이 그들의 생활근거지를 이용하여 쌓은 토축성(土築城)으로, 여러 차례의 증·수축을 거쳐 지금의 모습으로 되었다. 이 성은 신라에서 고려시대까지 관아지(官衙地)로 사용되었으며, 이후 임진왜란 때 감영지(監營地)로 이용된 적이 있었다.

달성이 지금과 같은 공원으로 조성된 것은 1905년이고, 그 후 일제의 침략전쟁 수행과 식민지지배 정책의 일환으로 1914년 대구신사(大邱神社)가 이 곳에 세워 졌으나, 1966년 8월에 신사건물을 해체하고 공원 내부를 정비한 후 오늘날과 같은 동물원 겸 공원으로 시민에게 개방하고 있다.

자료 담당자 :
향토역사관 변성호 Tel. 053-606-6437
최근자료수정일 :
2016.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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