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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 금동관
    [금동관 달성고분37호]

4세기경이 되면 삼국(三國)이

정립하게 된다. 이 시기 대구지역 내에서는 지역 집단간에 불균등한 발전이 격화되어, 강한 지도력과 권위를 갖는 우두머리 집단(首長層)이 등장하여 권위의 상징으로 거대한 묘(古墳)를 축조한다.

이 고분 조성 시기가 삼국시대에 해당하며, 이는 대구가 서라벌 세력에 의해 신라로 통합되던 시기이기도 하다. 비산동·내당동·대명동·불로동 등지에 축조된 고분들은 이 시기 지역 우두머리 집단의 묘이다. 고분 속에 넣었던 부장품들은 고분의 규모와 더불어 이 집단의 권위를 상징한다.

그 중 대표적이라 할 수 있는 달성고분 37호에는 다수의 토기를 비롯하여 경주의 금관과 같은 출자형 금동관(出字形 金銅冠)·금제 귀걸이·목걸이 등 장신구와 더불어 둥근 고리모양 손잡이장식이 달린 큰칼(環頭大刀) 등 많은 철제무기가 부장되어 있었다. 이 고분은 6세기 이후 대구가 신라의 한 지방으로 되기 이전에 축조된 우두머리 집단의 무덤으로서 당시의 권위와 위세를 보여주는 것이다.

자료 담당자 :
향토역사관 변성호 Tel. 053-606-6437
최근자료수정일 :
2016.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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