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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기시대

  • 지석묘
    [지석묘 상동]

중국의 상(商), 주(周)나라에서

먼저 발달하였던 청동기문화는 주변 지역사회에 큰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한반도에서는 기원전 2000년경부터 중국 청동기 문화의 영향을 받기 시작하여 신석기시대와는 다른 청동기시대로 진입한다.

주거생활에서는 마을을 형성하고, 신분과 재산의 차이를 갖는 사회로 변하며, 이전에 사용하던 빗살무늬 토기는 제작이 쉽고 많이 만들 수 있는 민무늬 토기로 바뀐다. 청동기를 자체적으로 생산하지는 못하였으나, 간화살촉·간돌칼 등 청동제 무기를 모방해 기능을 높인 석기를 사용하였다. 특히 매장형식에서는 고인돌(支石墓)을 조성하게 된다.

대구에서도 청동기를 모방한

화살촉, 칼과 민무늬 토기가 곳곳에서 발견된다. 청동기시대 후기가 되면 대구지역을 흐르는 금호강·신천·매호천·남천·팔거천·진천 등의 유역에 수십에서 수백 기 까지 조성되어 전근대까지도 남아있었지만 지금은 거의 사라지고 없다. 이러한 고인돌 유적의 분포는 청동기시대가 되면서 대구가 한반도 남쪽의 큰 중심지의 하나를 이루었음을 말해준다.

  • 간돌화살촉
    [간돌화살촉 상동, 서변동]
  • [갈판·갈돌]
    [갈판·갈돌 월성동 주거지]
자료 담당자 :
향토역사관 변성호 Tel. 053-606-6437
최근자료수정일 :
2016.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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