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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의 역사 및 연표


  • [대구시가지]

  • [팔공산일출]

대구는 지금으로부터

2만 년~1만 년 전인 구석기시대부터 사람들이 살게 되었던 것 같다. 그 후 신석기, 청동기와 철기시대를 거쳐 기원 원년 전후 진한 및 변한 24국 중 한 연맹체로서의 읍락국가로 발전하였다. 그리고 5세기말에서 6세기 초 무렵 신라에 완전히 통합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신문왕 9년(689)에는 신라 도읍을 달구벌(達句伐)로 옮기려고까지 하였다.

고려시대의 대구는 신라시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차지하는 비중이 낮았으나, 12세기부터 점차 위상이 상승하기 시작하였고, 무신정권기에는 대구 부근에서 발생한 민란을 진압하기 위한 군사 활동의 중심지가 되었다. 몽고 침입 때에는 부인사에 있던 초조대장경이 소실되었으며, 제5차 몽고 침입 때에는 공산성에서 대구지역 주민들이 대몽항쟁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조선 건국 후 대구는 농업의 주요 생산지로, 또 영남 내륙교통의 중심지로 부각되었다. 그 후 세조 12년(1466)에 도호부가 설치되어 군사적 중심지로서의 역할이 높아지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선조 34년(1601)에는 경상감영이 설치되어 이후 영남지역의 행정·교통·군사를 통할하는 명실상부한 중심지역이 되었다.

1876년 개항 이후 개화의 물결이 밀려들던 시기 일제의 침략이 점차 노골화되자 1907년 국내 최초로 대구에서는 절미·금연·금주를 통하여 기울어 가는 국권을 회복하고자 국채보상운동을 일으켰다.

1910년 일제에 의해 국권이 침탈당하자, 1915년 영남지역의 독립 운동가들은 비밀결사단체인 조선국권회복단, 대한광복회 등을 조직하여 일제에 항거하였고, 1919년 3·1운동 시기에는 학생들이 중심이 된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이처럼 대구지역은 일제강점기 항일운동의 중심지 역할을 한 곳 중 하나였다.

1945년 광복 이후 해외 귀환동포와 월남한 피난민의 유입으로 급격한 인구증가를 보게 되었고, 1950년 6.25전쟁기에는 나라를 지키는 최후의 방어선인 낙동강 전선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으며, 1960년 대구에서 일어난 2·28학생의거는 4·19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 이후 대구는 성장을 계속하여 영남지역의 중심도시로 발전, 1995년 광역시가 되면서 7개 구와 1개 군을 거느린 거대도시로 성장하였으며, 2002월드컵을 치르고 2003대구하계유니버시아드를 개최하는 등 국제도시의 면모를 갖추기에 이르렀다.

연표

연표
시대 연대 주요사항
선 사 · 고 대 2만~1만년전 구석기시대 달서구 월성동유적
기원전3,500~2,000년경 신석기시대 상동·대봉동·서변동유적
기원전10~4세기경 청동기기시대 진천동·상동·이천동·대봉동 등의 고인돌유적,
서변동·월성동 등의 마을유적
기원전1~2세기 원삼국(초기철기)시대 복현동·팔달동·대명동·불로동·두산동
등의 유적
기원전 1세기 무렵 달구벌국 성립, 비산동·평리동·신천동·만촌동·지산동 등의 유적
261 신라 첨해이사금 15년, 『삼국사기』에 달벌성 축조 기록 보임
5~6세기 신라에 완전히 편입, 달성주변 고분군 형성
518 신라 법흥왕 5년 무술명오작비 건립
689 신라 신문왕 9년, 달구벌 천도 시도
757 신라 경덕왕 16년, 달구화현을 대구(大丘)현으로 개명
839 신라 민애왕 2년, 김우징의 군대와 왕군(王軍), 대구에서 전투
927 신라 경애왕 4년, 고려군과 후백제군의 공산전투
고려 1018 현종 9년, 수성군·해안현을 동경의 속군으로,
대구현을 경산부의 속현으로 편입
1143 인종 21년, 대구현에 현령관 파견
1203 신종 6년, 부인사 반 무신란
1232 고종 19년, 몽고침략으로 부인사 초조대장경 소실
1255 고종 42년, 공산성에서 대몽항쟁
1390 공양왕 2년, 수성군·현풍현에 감무를 파견
조선 1394 태조 3년, 대구현에 수성·해안·하빈현을 편입
1419 세종 1년, 대구군으로 승격
1448 세종 30년, 군수 이보흠의 건의로 사창(社倉) 실시
1466 세조 12년, 대구도호부로 승격
1563 명종 18년, 연경서원 설립
1590 선조 23년, 대구읍성(토성)을 축조
1593 선조 26년, 임진왜란으로 인한 서사원·손처눌 등 의병 거병
1601 선조 34년, 경상감영 설치
1640 인조 18년, 가산산성 내성 축조(1648년 재축조)
1700 숙종 27년, 가산산성 외성 축조
1736 영조 12년, 대구읍성(석성) 축조
1778 정조 2년, 『조선왕조실록』에서 본격적으로 大丘를
大邱로 쓰기 시작
1895 고종 32년, 대구부로 개편, 이듬해 다시 대구군으로 개편
대한제국 1899 광무 3년, 달성학교 설립
1905 광무 9년, 달성에 공원조성
1906 광무 10년, 일제 통감부의 대구이사청 설치, 대구민의소 설립
1907 광무 11년, 대구읍성 철거, 국채보상운동 전개
일제강점기 1910 대구군이 대구부로 변경
1915 조선국권회복단 중앙총회 결성
1919 3월8일 대구독립만세운동
1927 신간회 대구지회 결성, 의열단원 장진홍의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시도
1941 대구사범학교 학생들의 반딧불회 사건
1943 대구상업학교 학생들의 태극단 사건
대한민국 1946 대구 10·1 사건발생 (미군정기)
1949 대구시로 개칭
1958 달성군 일부 대구 편입
1960 2·28민주학생의거
1963 구제(區制) 실시(중·동·서·남·북)
1980 수성구 신설
1981 대구직할시로 승격(6개구)
1988 달서구 신설
1995 달성군 편입, 대구광역시로 승격(7개구, 1개군)
자료 담당자 :
향토역사관 변성호 Tel. 053-606-6437
최근자료수정일 :
2016.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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